1565년에 태어난 오타니 요시쓰구.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인을 모셨던 시녀를 어머니로 두었으나, 아버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소년기부터 히데요시의 슬하에서 훗날 맹우가 되는 이시다 미쓰나리 등과 경쟁하며 성장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히데요시가 천하를 제패하자, 요시쓰구는 뛰어난 실무 관료로서 도요토미 정권에 기여했습니다.

1589년, 쓰루가의 영주가 된 요시쓰구는 쓰루가성을 확장하여 마을을 정비하는 등 쓰루가를 ‘성이 있는 항만 도시’로 변모시켰습니다. 쓰루가는 교토 및 오사카에 물자를 공급하고 전쟁 시에는 군량, 선박, 선박 조종사를 정비하는 거점으로서 기능했습니다. 근세 이후의 쓰루가항이 번영할 수 있었던 초석은 요시쓰구 시대에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데요시가 타계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도요토미 가문을 지탱하던 미쓰나리와 도쿠가와 측이 전투를 일으킨 것이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입니다. 미쓰나리 측이 패배하면서 미쓰나리의 측근이었던 요시쓰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후 쓰루가성도 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요시쓰구는 지략에 능했던 인물로 알려져 드라마나 소설 등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병을 앓으면서도 맹우와 함께 전쟁터에 섰던 의리 있는 무장으로서 널리 칭송받았습니다.